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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IST LETTER

오는 가을을 물끄러미 바라본 3인이 보내온 편지. 김현은 책으로 ‘추일서정’을 읊고, 배윤경은 단게 겐조의 말을 새기고, 박세회는 우는 기타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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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서정

시인 / 김현
2009년 <작가세계>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글로리홀 >이 있다. 시를 쓰고, 여성인권단체에서 일하고, 마을공 동체 사업의 활동가이고, 2012년에 짧은 영화 <영화적 인 삶 1/2>을 연출했다. 독립잡지 <더 멀리>를 만들고 있고, 최근엔 김현이 짓고 이부록이 그린 <걱정 말고 다 녀와>를 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 요. 낙엽이 쌓이는 날.’ 다른 계절이 아니라 가을에 꼭 해야 할 일을 만드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길 바란다. 이제 누가 가을을 사색의 계절로 여기는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이면 어김 없이 책 읽기를 권하고 책을 읽다 한 번쯤 딴생각에 빠져보 기를 권하고 싶다. 어떤 책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책을 읽다 가 우두커니 나에게도 낯선 내가 되어보는 것이다. 가령, 가을에는 왜 입이 달고 가을에는 왜 혼자 정처 없이 걷고 싶은지. 가을에는 불현듯 사무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 않고 가을에는 부모와 자식이 가야 할 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수에 젖게 되는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고양 이 한 마리가 깨닫게 해주는 인생의 의미란 없는 걸까. 가을에는 학창시절 교정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이의 얼굴 이 흐릿해지고, 가을은 괜히 먼지 쌓인 졸업앨범을 들추게 되는 계절. 가을에는 한 마리 작은 개에게 마음을 건다. 버려지거나 학대받은 것들에게 가을은 얼마나 혹독한 시절을 준비하는 쓰라린 계절일까. 그런 걸 생각하면 자연스레 ‘돌아와라 마봉춘’을 위한 파업을 지지합시다,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의 20주년을 기꺼이 축하하고, ‘내일의 사무보다 오늘의 허리!’ 직업병을 앓는 사무실의 동료에게 손 내밀고 싶다. 그러니까 가을에는 몸보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을 따라 몸이 움직이는 일을 하면 된다. 어제는 올 들어 처음으로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한밤이었다. 라디오 볼륨을 낮추고 책을 덮고 창문을 반쯤 열어두었 다. 백로. 24절기 중 하나인 백로에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는 때. 경상남도의 섬 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했다. 가을밤엔 섬 에서의 우중산책을 떠올리는 일에 몸을 맡기어보기도 하는 것. 책을 열어야지만 찾아오는 생각이 있듯 책을 덮어야지만 찾아오는 생각이라는 것도 있다. 그 밤, 가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책을 덮지 않았더라면, 섬에서의 우중산책을 떠올릴 일도 없었을 테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을에는 책을 펼치라고, 책을 덮으라고도 권할 수 있겠다. 백로 즈음은 여름 농사를 짓고 추수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때이다. 가을 독서와 가을 사색과 가을 휴식은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할 수 있다. 무르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는 침묵 속에 빠지는 것일까, 도약을 이룩하는 것일까. 무 릇 우리는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침묵과 도약의 기쁨을 안다. 가을비 내리는 날 우산 속에서 누구나 고개 숙이고 조 용히 빗물이 만들어내는 무늬를 본다. 후두두 세차게 그러나 시원스럽진 않게 떨어지는 비의 추락은 원숙한 삶을 은연중에 위무하고, 가을엔 삶이 저만치 멀어지는 순간을 적은 책을 골라 펼치고 낙엽을 넣어두기도 한다. 그것이 시간 이라도 되는 양. 낙엽, 낙엽으로 비유되는 생은 도약의 산물이다.

책에도 제철이 있다. 가을은 산문의 계절. 해마다 이맘때면 한 번씩 챙겨 읽는 책이 있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이 다. 이 책에는 장 그르니에와 그의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물루’에 관한 산문이 담겨 있다. 섬에 관한 긴 산문 몇 편을 모아 묶은 이 산문집에 고양이에 관한 글이 끼어 들어간 건 의아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고양이는 섬이다. 고양이 물루라고 제목 붙여진 산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 어떤 책은 한 문장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짐승이 있든 없든 가 을에 저 한 문장을 발견하는 이 누구든 이런 광경을 떠올릴 테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갸릉갸릉 잠들어 있는 침대나 의자. 그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후다닥 장롱 위로 뛰어올라 몸을 숨기는 모습. 머릿속에 그려진 형상, 당신은 그때부터 사색 중이다. 그 사색은 고양이를 통과해 자신에게로 간다. 잠든 고양이를 아무 말 없이 보는 이의 침묵과 뛰어오른 고양이 에게로 향하는 시선의 도약은 나 역시 짐승들의 세계에 포함된 자라는 순리를 일깨워준다. 때때로 가을에는 밑줄 그을 만한 인생을 물색하고 한쪽 귀 퉁이를 접어야 하는 인생의 순간을 탐색할 수도 있다. 사람 마다 밑줄의 장소와 접히는 시간이 다름은 물론이요, 그 다름으로 인해 사람은 각각 다른 사색의 시공 안에 존재한다. 장 그르니에는 물루의 성장이라는 장소와 죽음이라는 시 간을 통해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멀고도 가까운 거리감을 살핌과 동시에 “범우주적인 사랑의 법칙”, 즉 죽음에 복종하고 다시 새로이 생존을 맞는 만물의 ‘우주적 인 삶’을 성찰한다. ‘고양이 물루’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는 이제 땅속에 누워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부터 떨어진 낙엽 이 그 위를 덮었다.” 짐짓 가을에 고양이 한 마리를 살펴 읽으며 먹고사는 것과 먼 생각에 빠져보는 사람만이 자신의 어떤 시간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든다. 깨닫는다. 이를테면 “물루의 죽음은 내가 나의 힘을 과신하고 있었음을 가르쳐주었다”라고. 그때 그 멈춤, 그 떠오름, 그 깨달음의 시간은 자신 안이 아니라 자신 밖에서 원하다. 보편적이 다. 우주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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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이제 그만 울 때가 됐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 박세회
오랜 시간 잡지계에서 피처 에디터로 살았고, 현재는 허 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뉴스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허핑턴 인터뷰’ 칼럼을 보면 21세기형 디지털 인터뷰의 진화를 느낄 수 있다. 4인조 밴드 썬스트록(Sunstroke)에 서 보컬을 맡고 있다.

 

피아노는 노래하고 춤을 춘다. 브라스는 걷거나 뛴다. 그러나 기타는 운다. 기타는 처량한 아르페지오로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블루노트를 섞어가며 흐느끼기도 하고, 간혹 말 그대로 ‘울부짖기’도 한다. 시간이 남는다면 개리 무어의 ‘파리지엔 워크웨이즈(Parisienne Walkways)’를 들어보시길. 무려 20여 초 동안 울부짖는(Howling)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전자 기타는 정말이지 울분과 광기를 표현하기에 최적화된 악기다. 지판에 줄을 누른 후 위로 밀어 올리면(밴딩이라고 한다) 음이 높아지는데, 밀어 올렸다 내렸다 빠르게 반복하면 박효신이나 김범수처럼 한 맺힌 비브라토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 길에서 치한을 만난 여자처럼 소리를 ‘꺄악’ 하고 지를 수도 있다. 기타 줄을 튕기고 나서 재빨리 손가락을 살짝 대서 뮤트하면 ‘꺄 악’ 하는 소리가 난다. 테크닉 자랑할 때 말고는 쓸 일은 별 로 없지만 말이다. 한때 기타가 이런 특성 덕에 최고의 악기 로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몇몇 기타 키드들은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다”, “ 인간 목소리와 가장 근사한 소리를 내는 악기다” 등.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는 ‘왜 나의 기타는 조용히 우는가 (Why My Guitar Gently Weeps)’라는 기사를 냈다. 여기서의 울음은 조금 다른 의미다. 기타 산업이 망해가서 기타 가 운다는 의미로, 비틀즈의 노래 ‘나의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While’만 ‘Why’로 바꿔 단 잔인한 제목이다. 세계 3대 기타 제조사인 펜더, 깁슨, 피알에스(PRS)는 이미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그나마 팔리는 거라곤 저가의 연습용 기타들뿐이라는 뻔 한 얘기다. 굳이 해외의 기사로 읽지 않아도 한국도 마찬가 지다. 기타숍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물으니 “2백만원이 넘는 고가의 새 기타를 사는 건 주로 실용음악과에 들어가기 위한 대입 학생들”뿐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기타가 사라지는 건 제프 백, 에릭 클랩튼, 카를로스 산타나 같은 ‘기타 히어로’가 요즘 세대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니 21세기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라고 하면 매튜 밸러미(뮤즈), 잭 화이트(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존 메이어(테일러 스위프트 전 애인, 솔로로 활동)가 떠오르는데, 다들 이미 우리 나이로 마흔이 넘었다. 그러니 ‘젊은’ 기타 히어로가 없어서 기타가 안 팔린다는 말도 뭐 일리는 있다. 그러나 거기서 생각을 멈춰도 되는 걸까? 이제는 왜 더 이상 새로운 기타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지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 하지 않을까?

아니, 좀 더 인색하게, 기타 음악은 이미 대가 끊긴 게 아닐까? 한 남자의 음악 인생을 생각해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지 않나 싶다. 1979년생인 이 남자는 ‘카라스 플라워스(Kara’s Flowers)’라는 개러지 밴드에서 1997년에 인생 첫 앨범을 발표했다. 거의 펑크에 가까운 드라이브 톤, 곡당 16 마디가 넘는 기타 솔로. 나로서는 당시에 ‘정말이지 멋진 밴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앨범은 5천 장밖에 팔리지 않았고, 레이블에서 퇴출당했다. 퇴출 후 방송작가로 전전긍긍 하며 옛 멤버들을 모아 여러 장르를 실험하며 해답을 찾던 그는 새로운 이름으로 2002년에 데뷔 앨범을 내는데, ‘디스 러브’라는 노래가 히트를 쳤다. 눈치 챘겠지만, 3년 뒤에 그래미 신인상을 손에 쥔 ‘마룬 5’의 애덤 리바인 얘기다. 가끔 거친 기타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카라스 플라워스’ 와 그루비한 베이스와 보컬이 유혹의 춤을 추는 ‘마룬 5’의 앨범을 연달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 어쩌면 기타가 울고, 불고, 소리칠 수 있다는 게 모든 음악에서 장점은 아니겠구나. 무대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기타리스트들은 보컬 뒤로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아야겠구나.” 아직도 카라스 플라워스를 더 사랑한다는 건 나의 작은 비밀일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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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MAN NA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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