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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소록도 섬마을

2017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록도 첫 마을, 서생리. 관광지도, 유적지도 아니다. 소록도는 누군가의 마을이었고, 마을이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한 섬이다. 섬의 형상이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하여 소록도라 불린다. 한국의 다도해는 동해와 달리 굴곡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이고, 사슴 형상이라는 것은 간척 사업의 손길이 뻗치지 않아서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우들의 주거지다. 그들은 섬을 나가기 못했고, 외부인은 섬에 들어올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도 많다. 개발할 여력도, 필요도 없으니 시간이 멈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오후의 찬란한 빛에 드러나는 폐허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소록도에서 폐허의 풍경은 본 사람들은 그 풍경에 찬탄하거나,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둘 중 하나다. 100년의 시간을 봉인하고 있는 소록도가 우리 앞에 놓였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니 최고의 관광지로 개발될 수도 있고, 섬 전체가 살아 있는 뮤지엄으로 봉인될 수도 있다. 지난 8월 31일, 소록도 서생리에는 “소록도 첫 마을, 서생리로 오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파란 현수막이 걸렸다. 건축가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은 소록도의 9개 마을 중 사람이 살지 않는 서생리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복원보다는 보호에 가까운 임시방편의 장치만 해두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머리를 맞대고, 100년의 시간을 어떻게 남기고 기억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하자고. 아픈 과거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더디더라도 신중하게 디뎌야 하는 길이다. 그 여정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지금부터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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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사이: 조성룡의 소록도 치유의 건축

김민수 (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 주임교수)

최근에 필자는 보존 작업이 1차 마무리된 소록도 서생리 마을을 조성룡 선생과 함께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처음 본 그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십 년간 자연 붕괴 과정을 거쳐 ‘밀림 속 폐허’가 되어버린 저승의 집들과 마을이 다시 이승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 서생리 보존계획은 요즘 전국의 도시 곳곳에 오남용되고 있는 ‘도시재생’의 흔한 수법적 수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것은 재생이 아니라 ‘죽음’에 개입해 시간을 동결(frozen)’해 구천을 떠돌고 있던 집들을 건축보존학 차원에서 정비했기 때문이다. 뒤덮은 밀림을 조심스레 핀셋으로 발라 내 집의 윤곽과 마을의 켜를 찾아내고, 모든 건축적 재료는 그곳에서 나온 목재, 기와, 벽돌 등 폐기물들을 고스란히 재활용했다. 예컨대 부서진 벽돌로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잘게 조각낸 우드칩으로 길을 깔고, 심지어 집 옆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조차 버리지 않고 모두 보듬었다. 또한 붕괴된 집의 구조는 비계대로 받쳐져 시간을 동결시켰다. 신축 공사장에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사라지는 강관 파이프가 치료의학 차원에서 구조보강과 보존처리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동안 의재미술관을 비롯해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선유도 공원 등에서 보듯, 조성룡의 도시건축적 화두는 ‘장소와 사 람 혹은 풍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방식에서 빛을 발해왔다. 언젠가 필자는 그의 건축관을 일컬어 “냉철한 현대 건축의 언어로 사람과 생태와 풍경이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중재하는 것”이라며, 그를 도시의 폐허 속에서 한 줄기 인간의 희망을 구하는 ‘잠입자’에 비유해 말한 적이 있다(졸저, <필 로디자인>, 415쪽). 내 마음속에 조성룡 선생은 마치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처럼 폐허가 된 도시와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가본 적 없는 ‘금지된 구역’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한 잠입자’로 새겨져 있다. 그는 건축가 자신의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유형의 건축가가 아니다. 대신에 그는 언제나 우리를 구역으로 데려가 도시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보여준다. 어쩌면 조성룡의 서생리 마을 보존작업도 그동안 그의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안내한 ‘구역’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론적 무게감과 밀도감으로 다가온다. 그가 그곳으로 안내한 이들이 서생리 집들을 보고 너무 놀라서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 이다. 이 모두가 집의 역사적 기억이 지닌 삶의 무게, 곧 실존성과 무너져 내린 집들이 감당해온 중력에서 비롯된 것 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번 서생리 마을 보존이 ‘이승과 저승을 잇는’ 혼의 시술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더 이상 생의 중력을 견딜 수 없어 오래전에 주저앉아 파묻힌 한센인들과 집의 여한(餘恨)을 다시 중력을 거슬러 들어 올리고, 소록도의 역사적 기억과 삶의 상흔을 톺아 보는 ‘치유의 건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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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의 고려, 최소의 개입

김원식 (건축평론가)
소록도가 100살을 넘기고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텁고 단단했던 무관심, 온갖 무겁고 숨쉬기 힘든 편견과 멸시의 껍질이 벗겨지고 있으며, 이제는 그 진실이 밝게 드러나 주목되기 시작하고 있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주길 바라 던 사람들조차 이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랜 동안 한센병 환우들이 기거하던 이 섬의 많은 부분은 현재 남은 환우들이 기거하는 곳을 제외하면 바로 수년 전 조성룡이 눈을 돌리기까지 시간의 전개와 함께 환우 수가 감소하며 남은 터 위에 오로지 건물 폐허만이 남았고, 그 위엔 정처럼 깊고 두터운 나무와 풀이 뒤덮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수년 전부터 소록도에 드나들기 시작한 조성룡은 그 이후에도 이곳에서 좀처럼 손을 떼려 하지 않음으로써 이 새로운 식물성 더께들을 제거하고 드러내어 원래의 건물과 마을의 모습을 상기시키게 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의도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진행 중인 소록도에서의 작업결과를 예시하고 있는 것은 소록도 입구의 거대한 주차장에 외로이 하나 남겨진 병사(病舍)이다. 이 건물은 한센병 환우들이 기거하던 건물 중 하나로 방문객들로 하여금 그 규모와 원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작은 방들이 일렬로 배치된 건물의 지붕, 담 등은 뜯겨지고 벗겨져 허름하다. 반면 원형을 보존하고자 의도된 철구조물이나 창문 보호 구조물 등 최소한의 건축적 개입은 건물을 보호하고 기본적인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 등을 암시함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 건물은 여러 측면과 시점에서 의미로 충만하고 그 켜가 다양하고 깊다. 그토록 작은 공간으로 구성된 병사는 소록도가 지니고 있는 굴곡지고 두터운 켜들로 엮인 역사를 생생하게 언급하는 증거물, 그리고 상징물이 됨과 아울러 도태되고 망가진 건물과 그를 에워싼 소록도의 환경을 어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건축적, 문화적 그리고 환경적인 새로운 시도의 시작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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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록도 서생리 옛 터 보존사업 준공식에 참가해 참석자와 마을 주민에게 보존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성룡. 2 서생리 옛 터 보존사업으로 정리된 집 한 채. 이전까지는 나무로 뒤덮여 이곳에 집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3 현재는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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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모이자!

최근 수년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주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건축가’를 추동하는 일이었다. 건축가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며 일반 시민들이 알아차린 탓이다. 공인이 아닌 한 직업인으로서, 개인의 사적 욕망을 취하는 자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건축가뿐 아니다. 대학교수도, 평론가도, 편집자도 그러하다. 반대로 공인이 아닌 한 직업인으로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등을 두드려주고, 응원을 하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소록도를 취재하며 알게 된 이들은 하나같이 명성이나 사적 이득과는 전혀 무관한 소록도의 미래에 힘을 실었다. 김원식 건축평 론가, 김민수 서울대디자인과 교수, 보안여관의 최성우 대표, 김재경 건축사진가, 수류산방의 박상일 방장과 심세중 실장,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의 김경완 실장. 소록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에서 소록도까지는 5시간을 달려야 한다. 당일 일정으로 출장을 간다면, 새벽 4시에 출발해 다음 날 새벽 4시에 도착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소록도를 가장 여러 차례 오간 이는 조성룡 건축가다. 한달 전, 서생리 마을 보존 작업을 끝냈지만 끝난 게 아니다. 날아간 지붕 자리에는 비가 들이쳐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막는 조치를 취했고, 붕괴 위험이 있는 벽은 강관 비계로 받쳐두었다. 보존보다 보호에 가까운 최소한의 개입을 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보존해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9개의 마을은 각기 다른 땅의 모양과 역사와 건축 형태를 갖고 있다. 서생리 마을에 대한 조사도 끝난 게 아니다. 상처 부위는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하는데, 아직 병명을 모른다. 우선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유보시켰으니 상황별로 하나하나 논의해서 나아가자며 조성룡 건축가는 인문학자에게 문화기획자에게 편집자에게 손을 내었다. 혹자는 궁금해한다. 선유도 공원과 꿈마루로 모범적인 재생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하려 하지 않고, 왜 주야장천 밑조사만 하는 것이냐. 조성룡 건축가의 답변 중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실패하면 안 되니까요.” 옛 장소를 활용하되, 더 나은 개념으로 업사이클했던 것이 선유도 공원이라면 소록도는 마을과 땅에 관한 이야기다. 쉽사리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포럼을 진행하고, 소록도의 현재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미래를 묻는 전시를 진행할 참이다. 소록도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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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MAN NA, AHN SANG HO    

PHOTOGRAPHER  PARK SUNG HO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7년 10월호
본 기사를 블로그, 개인홈페이지 등에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기사를 재편집하여 올릴 경우 발생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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