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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ART

슈퍼플렉스의 도구들

2~3마리의 소를 키우는 원주민 가족을 위해 바이오 가스 플랜트를 만들고, 오픈 소스 기반의 맥주 제조법을 오프라인 월드에서 유통시키고, 50개 이상의 국경을 넘어 이민자들의 향수 어린 물건을 한곳으로 불러들이는 일. 가당치 않을 것 같은 일들을 현실에 존재시키고야 마는 3인의 게릴라, 슈퍼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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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펜하겐시의 의뢰로 건축사사무소 BIG와 토포텍1과 협업한 공원 프로젝트, 슈퍼킬렌(Superkilen)은 슈퍼플렉스의 대표작이다. 사진은 암거래 시장 (The Black Market) 전경. Photo: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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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태국 무에타이 전용 링(Thai-Boxing, Bangkok). Photo: Iwan Baan. 3 특별 제작된 어플리케이션에서 각기 다른 역사와 사연을 지닌 100개의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Photo: N/A. 4 슈퍼킬렌은 붉은 광장, 암거래 시장, 녹색 공원으로 나뉜다. Photo: Superflex. 5 팔레스타인에서 온 흙(Soil from Palestine), 50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Photo: Superflex.

 

지난 10월,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터바인홀의 주인공으로 슈퍼플렉스(Superflex)가 낙점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3회째를 맞은 ‘현대 커미션’은 현대자동차가 테이트모던과 장기 후원 계약을 맺으며 진행하는 국제적 전시다. 오 프닝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니, <One Two Three Swing!> 이라 지은 전시명처럼 터바인홀은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3인용 모듈식 그네와 거대한 스틸 공, 붉은 카펫이라는 요소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었고, 슈퍼플렉스의 무대에 오른 관객들은 무장 해제되어 십수 년 만에 타는 것이 분명 할 법한 그네에 올라 ‘Swing!’을 반복한다. ‘Come Together, Swing Together’를 외치며, 터바인홀을 그네로 꽉 채운 이 호기로운 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 며칠간 그들의 행적을 쫓았다.

슈퍼플렉스는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야콥 펭거, 라스무스 닐슨 등 덴마크 출신의 3인이 구성원이다. 2010 년 <더 브루클린 레일(The Brooklyn Rail)> 포럼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셋은 ‘슈퍼플렉스 브라보(Superflex Bravo)’라는 페리를 탔고, 선원들은 모두 오렌지색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다. 선원들의 능숙하고 유용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고, 슈퍼플렉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약간은 진지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 ‘Bravo’ 는 떼어냈다.” 슈퍼플렉스 홈페이지에서 오렌지색 점프슈트를 입은 ‘앳된’ 3인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팀을 결성한 것이 1993년이니, 24년 전이다. 셋은 코펜하겐 로열 대니시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트에서 만났다. 당시 미술 학교에서 가르치는 미술은 너무나 고전적인 형태고,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낭만적인 개념 또한 견딜 수 없었다. 슈퍼플렉스의 모든 프로젝트는 ‘Tools’라는 단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정렬되어 있다. 모든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상황에 바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도구’다. “우리의 작업은 예술적 맥락에서 기능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 매우 실용적인 수준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이오가스(Biogas)’ 프로젝트는 예술 기관에서 이론적, 담론적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고 동시에 탄자니아의 한 가족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한다.” 2~3마리의 소와 닭을 키우는 가족을 위해 만든 바이오 가스 플랜트 이야기는 이렇다. 1996년부터 슈퍼플렉스는 유럽과 아프리카 엔지니어와 협력해 농촌 지역에 사는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 가스 플랜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1997년 8월,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에서 작동하는 최초의 바이오 가스 시스템을 만들었고 아프리카 조직 SURUDE(Sustainable Rural Development)과 협력해 탄자니아 중부의 작은 농장에서 이를 시험했다. 2~3 마리의 소 배설물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8명의 가족이 사는 가정에서 하루 동안 요리와 조명을 위해 필요한 가스로 변환하는 데 충분한 양이었다. 슈퍼가스(Supergas Ltd)사의 엔지니어이자 파트너인 장 말란(Jan Mallan)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처음 내게 이런 프로젝트를 물어보았을 때, 좋은 생각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설치에 성공 했다. 슈퍼플렉스는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여기고, 일에 필요한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선의를 확산시킬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주저하지 않는다. ”

2011년에 진행한 ‘슈퍼킬렌(Superkilen)’은 슈퍼플렉스의 대표작이라 불린다. 코펜하겐시의 의뢰로 건축사사무소 BIG, 토포텍1과 협업한 공원 프로젝트다. 코펜하겐에서 이민자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 한가운데에 들어선 공원으로, 50개국 이상의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붉은 광장, 암거래 시장, 녹색 공원 등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붉은 광장은 카페 공간, 스포츠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개념의 공원(광장)이다. 암거래 시장은 분수대와 벤치가 놓인 고전적인 형태의 공원(시장)이고 녹색 공원에서는 피크닉을 즐기고 개를 산책시킬 수 있다. 공원에 으레 놓여 있을 법한 벤치, 쓰레기통, 놀이기구, 맨홀 뚜껑 등인데 알고 보면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체르노빌에서 온 코끼리 모양의 슬라이드, 태국 무에타이 전용 링, 쿠바 아바나에서 공수한 벤치, 네덜란드의 자전거 스탠드, 이라크 바그다드의 그네, 스위스 디자인의 벤치, 런던의 붉은 쓰레기통, 파리에서 온 맨홀 뚜껑, 일본에서 가져온 문어 모양의 미끄럼틀까지 모두 공수했다. 똑같은 사본으로 제작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이송 하기도 했고, 100개가 넘는 이 시설들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의 이주민들이 도왔다. 슈퍼킬렌을 위해 별도로 제작한 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각 사물을 카메라로 비추면 친절하게 이런 식의 사연이 뜬다. “자메이카 사운드 시스템은 자메이카 길거리에 1950년대 초부터 등장했다. 시민들이 길거리에 자발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이 발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처음에는 아메리카 블루스 음악 위주로 나왔지만 레게를 비롯해 점차 자메이카 음악 장르가 선곡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길거리에서 음악을 듣지 않게 되면서 사운드 시스템은 하나 둘 사라졌고, 철거 위기에 놓인 자메이카 사운드 시스템 하나를 이곳에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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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looded McDonald’s> 필름 스틸컷. 방콕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에 1980년대 맥도날드의 식당 내부를 실물 크기의 복제품으로 그대로 재현, 물을 흘려보냈고 완전히 침수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이었다. Photo: Superflex. 3 소수의 농민들이 과라나 음료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툴을 개발했고, 생산된 제품은 과라나 파워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Photo: Superflex. 4  2~3마리의 소와 닭을 키우는 가족을 위해 개발한 바이오 가스 플랜트. 사진은 1996년, 태국 치앙마이. Photo: Superflex. 5 코펜하겐 갤러리에 설치된 ‘병원 장비(2014)’. Photo: Anders Sune Berg.
 

이번엔 슈퍼플렉스가 브라질의 국민 음료를 만들게 된 사연이다. 아마존 일대에서 자라는 과라나(Guarana)라는 열매가 있다. 카페인, 타우린 등이 함유되어 우리가 잘 아는 레드불이나 박카스에도 들어가는 성분이다. 예로부터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젊음을 되찾아주고,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생명의 열매로 알려져 왔다. 1906년부터 브라질에서는 검은 씨앗을 갈아 설탕을 넣어 만든 과라나 음료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브라질에서는 콜라보다 더 많이 팔리는 국민 음료다. 슈퍼플렉스가 과라나를 조사해달라는 연구 용역을 받고 아마존 한가운데에 묵게 된 며칠 후, 한 무리의 농부가 그들이 묵는 호텔에 와서 과라나를 수확하는 농민이라 말했다. 슈퍼플렉스를 일종의 NGO 단체라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NGO 단체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윤을 가져가는 과라나 음료 회사가 부당하다 생각했고, 슈퍼플렉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소수의 농민들이 과라나 음료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툴을 개발했고, 이는 덴마크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판매되는 과라나 음료가 되었다. 세계 최초의 오픈 소스 맥주 제조법을 발표한 것도 슈퍼플렉스다. 덴마크의 대표 맥주, 칼스버그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비 교한다면 슈퍼플렉스가 기획한 프리 비어(Free Beer)는 리눅스라고 할까. 코펜하겐 IT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전형적인 덴마크의 라거보다 더 풍미가 진한 맥주를 만들었고, 대학 식당에서 처음 만든 이 맥주에 버전 1.0(Ver.1.0)을 붙였다. 누구나 변경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제공되 는, 오픈소스 기반의 제조법인 셈이다. 누구나 이들의 조리법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고, 자유롭게 변경 할 수 있지만 바뀐 조리법을 공개하는 것이 의무다. 프리 비어 홈페이지(freebeer.org)에 가면, 2005년 6월을 시작으 로 2017년 10월까지의 아카이브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의 프리 비어는 ‘Free Beer 6.0-The Atlantic Brew’ 버전이다. “오픈 소스가 디지털 월드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 개발도상국가에서 에이즈 약품을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 또한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병원 장비(Hospital Equipment)’(2014)는 예술적 실천에 대한 질문이다. 갤러리에는 수술실 장비(수술대와 외과용 램프) 설치와 이를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갤러리에 들 어간 관객이 생과 사, 둘 중 하나의 장면을 설정할 수 있고 선택에 따라 전쟁과 분쟁 속에 놓인 이들의 화면을 마주할 수도 있다. 전시회가 끝나면 수술실 장비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병원으로 배송된다. 컬렉터는 사진 작품만 구매 할 수 있고, 설치되었던 수술실 장비는 실제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는 식이다. 미술품의 소유와 공유, 모금 캠페인의 허구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일상의 사물이 전시장에서 미술품으로 변화하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의 반어법이기도 하다. 슈퍼플렉스는 그간 네 가지 필름을 제작 했는데 그중 하나는 ‘침수된 맥도날드(Flooded McDonald’s)’(2008)다. 방콕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에 1980년대 맥도날드의 식당 내부를 실물 크기의 복제품으로 그대로 재현하고는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물을 흘려보냈다. 한 끼 의 행복한 식사를 위해 준비된 빵과 패티, 채소, 콜라, 쟁반, 가구가 물에 둥둥 뜨고 완전히 침수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20분이다. “신화적이고, 묵시록적이고, 서사시적인 어두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파괴적인 과정에 대한 느린 이 야기다.” 슈퍼플렉스는 파괴적인 현실에 대항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유연한 정체성을 가진 팀이 되길 바랐기에 선언하는 대신, 질문하고 모색한다. 실제 대안을 찾아 사회에 개입하고, 그 도구를 넓혀간다. 꽤 축적해온 도구들을 이곳(superflex.net/tools)에서 만나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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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슈퍼플렉스(superflex.net)


EDITOR  KIM MAN NA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7년 12월호
본 기사를 블로그, 개인홈페이지 등에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기사를 재편집하여 올릴 경우 발생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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