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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LKS

첫 여든 편집자, 꿈꾸는 정은숙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몇 달 전부터 기다려온 인터뷰이고, 게다가 1월이었다. 새해, 긍정의 기운을 듬뿍 전하고 싶었다. ‘80세까지 현직에서 편집자로 활동하겠다’는 어마어마한 꿈을 들려준 정은숙 대표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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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 감탄사를 연발해서 ‘감동천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역시, 만나기 전부터 흥이 났다. 유쾌하면서 정중한 말투를 핸드폰 너머로, 이메일로 느낄 수 있었고 촬영, 인터뷰와 관련한 내용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추진됐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웃고 감동한 채 돌아와 녹음을 풀었더니, A4 14장 분량이다. 필자의 글에 감동하고, 표지에 쓸 그림이 좋아 감동하고, 독자들의 반응에 감동한 ‘감동천하 정은숙’ 대표의 이야기를 30%로 줄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최대한 노력했다. 정은숙 대표를 왜 그간 만나지 않았을까, 깊은 반성을 했다. 대부분 그러하듯이 사실, 새 책이 나오면 필자를 인터뷰했다. 그러다 수개월 전 기이한 경험을 했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 중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으로 꼽았던 책들, 당대의 필자는 이 사람이라 칭송한 책들의 많은 수가 하나의 출판사로 귀결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헤리티지 뮤인>이 흠모하여 칼럼을 부탁했던 필자들(김연수, 김중혁, 김소연), 그간 인터뷰했던 문장가들(정민, 박택, 신형철, 박상미) 모두 마음산책에서 세네 권의 책을 냈고, 줌파 라히리와 제임스 설터의 소설책을 만나게 한 곳도, <수전 손택의 말>을 비롯해 주옥같은 ‘말 시리즈’를 낸 곳도 마음산책이었다. 적어도 내게 ‘마음산책’은 내 ‘마음을 산책’을 꾸준히 만들어온 곳이었다. 높은 감도를 잃지 않으며 꾸준히 좋은 책을 내는 비결을 이제라도 들어야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바로 그해 그달에 출판사에서 일하게 됐고, 책 만드는 일에 미쳐 15년을 편집자로 내리 일했다. 영화와 그림, 책을 좋아했던 정은숙에게 책 만드는 일은 천직이었다. 자신의 꿈을 담은 ‘마음산책’을 출판 등록하고, 사무실 연 것이 2000년 8월 16일이다. 광복절 다음 날이라 정확히 뜨거운 날씨, 사무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빈 책상, 긴장과 설렘. 그날부터 두 달간 100명의 필자를 만나  ‘마음산책’에서 도대체 무슨 책을 만들려는지 이야기하고 다녔다. 10월 15일, 첫 책이 나왔다.  김영하의 <굴비 낚시>다.  “몇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산문은 잡문을 모아서 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가진 산문집, 혹은 소설가라면 자신이 왜 문학을 하는지, 예술가는 자신이 왜 예술을 하는지 민낯을 드러내는 글을 담은 책. 예술책은 그림에 치중하지 않 고 오히려 ‘읽는’ 예술책을 만들자, 소설책은 그림과 이미지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 면에서 김영하 작가의 원고는 제게 여러모로 완벽한 조건이었어요. <씨네21>에 영화 이야기를 쓴 원고는데, 영화라는 주제만으로 쓴 산문이니 딱이었죠. 당시 신예 작가지만 필자로서 아주 좋아하는 작가고요. 두 번째로 나온 책이 당대 미문을 쓰는 문장가로 유명했던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 11월 15일에는 구효서 작가의 <인생은 지나간다>. 그렇게 세 권째 책을 내고 나니 마음산책이 어떤 책을 내야 할지 방향이 좀 더 뚜렷해졌어요.” 마음산책은 정은숙 대표를 포함해 ‘열 명, 스튜디오 규모’의 체계를 줄곧 유지해왔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터까지 모두 10명의 내부 인력이 책의 기획부터 마 케팅까지 진행한다. 외주를 하지 않는다. 외주를 주면 안 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우리끼리 잘 해보자는 것에 가깝다. “더 전문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분들 이 밖에 있지만 우리끼리 잘해보면 어떨까. 저희는 스튜디오 정신이라 표현해요. 10명이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하려면 한 달에 딱 두 권이 적당해요. 1년에 24권. 한 달 에 두 번 책이 나오고, 그중 한 권이니까 소중하죠. 어떤 책 이건 저희에겐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니에요. 다른 큰 출판사에 비해 마케팅이나 홍보를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마음산책과 일하면 전 직원이 매달려 내 책만 신경 쓴다는 것이 필자들에게 전달되고 묘하게도 그렇게 만든 책이라는 걸 독자들도 느끼는 것 같아요.”

투고된 글도 많고, 기획도 많은 와중에 한 달에 두 권만 내니 까다로운 숙고의 시간을 거치고, 그러다 보니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2015년 여름, 마음산책에서 사노 요코의 < 사는 게 뭐라고>를 출간한 후 타 출판사에서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줄지어 선보였듯 독자에게 사랑받은 책들의 ‘첫’ 필자를 많이 발굴했다. 문단에서 삼케이(3K)라 부르는 김영하, 김연수, 김중혁 작가 역시 30대 젊은 시절부터 마음 산책과 인연을 맺었다. “김연수 작가는 번역도 하시잖아요. 공부하는 유형이고 김중혁 작가는 미대 출신, 그림 그리는 작가고 김영하 작가는 사회에 발언하기 원하는 작가고. 세 분의 개성이 다 다른데 그런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산문집을 낼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해요. (마음산책은 국내 작가의 소설책을 내지 않는 원칙이 있는데 이미 굴지의 문학 출판사와 경쟁하기보다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책에 주목한다.) 마 음산책이 17년 됐는데, 초반에 책을 내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 시간을 함께 보내온 것이 저희에겐 자부심이 에요. 그리고, 한 작가와 계약할 때 적어도 세 권은 함께 내 달라는 약속을 하고 대부분 이어져왔어요. 이유가 있는데 세 권을 내야 정반합의 결과로 만족할 만한 책이 나옵니다. 첫 작업에서는 출판사의 의견이 좀 더 반영되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어떤 건 아쉽고, 어떤 건 좋아요. 그래서 두 번째에는 출판사가 살짝 뒤로 빠지고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반영해서 좀 마니아틱한 책이 나와요. 세 번째는 이 과정을 반영한 결과가 나오고. 이 과정 자체가 정말 즐겁죠.” 정은숙 대표의 책상 한쪽에는 흑백 사진 속에 담긴 작가들의 사진이 있다. 10여 권의 책을 마음산책에서 낸 로맹 가리, 16권을 낸 요네하라 마리, 7권을 낸 제임스 설터, 6권을 낸 줌파 라히리의 사진이 보이고 김연수, 김소연, 故 박완서 작가의 얼굴도 있다. 그들로부터 긍정의 기운을 받고, 항상 옆 에 두고 생각한다. 그들과 만들어온 깊은 시간, 도대체 이 인연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줌파 라히리와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처음으로 소개한 곳도 마음산책이다. 당시에 마음산책의 역자였던 박상미 작가가 뉴욕 브루클린에 있었고, 줌파 라히리의 출판을 하고 싶어 도움을 받았다. 첫 데뷔작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의 출판권을 따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게 다가갔다. 마음산책이 어떤 책을 만드는 출판사인지에 대한 사려 깊은 설명과 인도 출신의 이민자, 여성성 등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준비했다. 마음산책이 잘되려고 했는지, 당시 의외로 한국 출판사에서 오퍼를 많이 넣지 않았고 결국 출판권을 따냈다.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의 경우 맨부커상 6편의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어요. 수상 하지는 못했지만 멀지 않았다고 봐요. 작품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좋은 작품을 꾸준히 내는 작가예요. 책이 한 번 나오면 34개국에서 판매되는 작가고, 한국에서도 작품이 안 팔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장 규모가 가장 작은 편인데 계약 조건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게 고마워요. 아마존에 순위만 올라가도 보통 작가들은 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데, 저희는 돈 경쟁이 붙으면 가능한 한 오퍼하지 않아요. 세상에 낼 책이 많고 기획하면 좋은 책이 많은데 굳이 돈으 로 경쟁해서 책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임스 설터와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줌파 라히리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제임스 설터의 작품에 마음의 빚을 많이 졌다”고 말 한 바 있고 정은숙 대표는 제임스 설터에 대해 찾아보았다. 당시 작가는 90세다. “진행을 해보니, 제임스 설터 쪽에서 그래요. 왜 한국에서 그동안 본인에게 관심이 없나 했대요. 작가는 한국전에 참전한 공군이었고, 데뷔작이 한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쓴 <사냥꾼들>이었어요. 전쟁을 겪고 나니, 공군이었지만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한국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안타까운 건, 이 분이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작품이 사후에 나올 수도 있지만, 작가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을 수 없다 는 거예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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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표지로 택하는 원화는 되도록 직접 구매하는 편이다. 2 정은숙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마음산책에서 복작복작 재미난 일들을 많이 할 것 같다”며 ‘마음산책북클럽’ 계획을 발표했다. 독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워크숍, 카페, 원화 전시 공간, 북아트숍 등)을 포함한 새로운 마음산책 사옥이 서교동 이 터에 들어설 예정이다. 3 10년 전부터 서교동에 터를 잡은 마음산책 사무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정은숙 대표의 방이 위치한다. 출판사에 누가 방문 하는지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자리로 사람들을 반갑게 맞는 역할도 정은숙 대표의 몫이다. 4 마음산책과 오랜 시간 책을 함께 내온 작가들의 사진을 책상 한쪽에 놓아두고 경이로운 이 인연에 대해 곱씹는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뜻밖의 사실을 접했다. 정은숙 대표는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한때 시인이었다. 편집자 시절, 시집 두 권을 냈다. <비을 사랑한 이유>(1994)와 <나만 의 것>(1999)이다. 고종석이 쓴 <모국어의 속살>에서 고종석은 시집 <비을 사랑한 이유>에 대해 ‘서울 엘레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마지막 단락은 “이 시집은 그 소재와 스타일에서, 그리고 꿀릴 것 없는 높이와 깊이로, 신경림의 70년대 시집 <농무>와 버젓한 대칭을 이룬다”다. 정은숙 시인은 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정은숙 편집자로 남는 걸까. “시를 쓰는 건 생활과 밀접해요. 삶의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찍듯 몸에 저장해놓고, 말을 공굴리듯 굴려서 뱉어내는 거예요. 시보다 좋아하는 게 책 만드는 거라는 걸 알게 된 시기가 있었죠. 내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시가 아니라 책이구나. 지금까지 마음산책에서 370권 정도의 책을 만들었으니, 370편의 시를 썼다고 생각해요.” 책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운명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정은숙 대표에게 일상의 쉼표는 무엇일까. 채널예스에 ‘정은숙의 나홀로 극장’이라는 칼럼이 있는데, 격주 업데이트되는 칼럼을 보면 지독한 영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 에서 마음을 세탁하는데, 그것도 상영관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꼭 봐야 직성이 풀린다. 신촌과 여의도, 용산과 압구정동 등 각 영화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위치를 줄줄이 꿰고 있고, 보고 싶은 영화를 일주일 전에 생각해놓고 앱을 통해 예약해둔다. “영화 보러 갈 땐 두근두근~ 정말 그때 표정이 최고로 좋을 거예요. 최근 본 것 중 좋았던 영화는 헝가리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있고요. 대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26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했어요. 어린 장첸이 나와요. 14살 소년이었을 때 연기한 거죠. 대만의 현대사를 다루면서 소년의 성장담이 흐르는데 너무 아름다워요. 영화는 공간의 여행 같은 거예요 제게. 일상의 정은숙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 간 거 같아요. 광고가 시작되면 벌써 마음이 두근거려요. 첫 장면은 무엇으로 시작할까. 그때의 기분은 좋은 사람 만날 때의 두근거림과 항상 똑같아요. 혹자는 넌 어떻게 영화를 다 좋다고 할 수 있니라고 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봐서 그렇기도 하지만 영화가 정말 다 좋은게 여주인공이 입은 예쁜 색의 치마 하나 보거나 멋진 풍경만 봐도 제겐 성공인 거예요.” 정은숙 대표의 지극한 즐거움 중 또 다른 것은 시다. 침실 한쪽에는 시집 천 권이 꽂힌 책장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한 후, 아무 시집을 뽑아 아무 데나 펼치고 읽는다. 샤워를 할 때나 식사를 할 때나 계속 시를 생각한다. “시를 쓰는 건 버리고 버리고 정결한 뼈만 드러나도록 계속 버리 는 행위예요. 결국 시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고 말이 되죠. 저는 출판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과 문장을 매일 아침 만나는 거예요. 오랜 습관이에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거 같아요.”

원고를 읽으며 완성될 책의 형태를 꿈꾸듯 세상의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니, 분명 오래 간직해둔 꿈이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첫 여성 영화감독으로 치열하 게 살았던 <박남옥>을 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어떤 ‘첫’이 되고 싶은가? 선배들이 있으니까 첫 편집자는 될 수 없죠. 저는 ‘첫 여든 편집자’가 되고 싶어요. 지금도 화상 통화와 회의가 가능한데 그때는 기술이 훨씬 발전되어 있겠죠. 책의 형태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편집, 큐레이션이라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니스나 칸 해변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다음 책을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장소는 어디든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증명을 하고 싶어요. 편집 일이, 그간 만들어온 책들이 나를 얼마나 성숙시켰는지. 내가 생활처럼 여기는 이 직업이 나를 성장시킨 것. 그걸 자서전 같은 책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책을 만들며 증명하고 싶은 거예요. 여든의 편집자가 새로움을 추구 했을 때 그 새로움은 무엇일까. 그걸 한번 실험해보고 싶어요. 저는 노력할 거예요.” 정은숙 대표의 꿈을 듣고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듯하다. 매일 아침 시집을 읽는 행위는 편집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함이고, 일주일에 보는 세 편의 영화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함이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필라테스는 건강을 위함이다. 이 전에는 마라톤을 했고, 7년 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내 몸을 아끼는 거예요. 이 몸이 어떤 몸이냐 하면 여든에 새로운 출판물을 만들 몸이야, 어떤 식 으로도 새로움을 보여줘야 할 몸이야 하면서요.(웃음) 정말 큰 꿈이에요. 건강해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80 세에 저를 다시 한번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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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MAN NA    

PHOTOGRAPHER  KI SUNG YUL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8년 1월호
본 기사를 블로그, 개인홈페이지 등에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기사를 재편집하여 올릴 경우 발생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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