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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INTERVIEW

들어야 아는 것들

사람에서 사람으로 가는 것이 있다. 마음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이후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가 된 임흥순의 작품 속에는 그 마음이 오가는 길이 느껴진다. 결국 예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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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한다. 그는 주로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인 이슈에 휘말려 내몰린 여자들을 만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도 그런 만남의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는 네 할머니인 정정화(1900-1991)와 김동일(1932~2017), 고계연(1932~), 이정숙(1944~)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삶을 본인 인터뷰와 지인 인터뷰, 유품, 아카이브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서울관 5전시실의 외벽에는 그녀들의 ‘시나리오 그래프’가 붙어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몰린 삶을 살았던 네 여인의 개인연표이자 인터뷰 그래프다. 우리나라의 역사나 자연환경 변화의 징후를 함께 써놓았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해방과 동란, 격변기를 지나온 그녀들의 시간을 꼼꼼히 훑어가다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녀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아니 옮겨졌다. 고향뿐만 아니라 조국도 떠나야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역사라는 격랑에 휩쓸려 떠다닐 수 있구나, 라는 마음이 앞선다. 연표를 보면 정정화는 중국으로 망명한 항일 독립운동가다. 항일운동가의 딸인 김동일은 제주 4·3 사건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해 여생을 살았다. 고계연은 지리산에서 가족을 잃은 빨치산 출신의 여인이며, 이정숙은 베트남전쟁 당시 위문공연을 갔다가 이란에 정착해 이란-이라크전쟁까지 경험했다. 이 인터뷰 그래프는 임흥순이 3월에 완성할 영화의 기초 시나리오다. 이 할 머니들의 개인사가 우리나라와 그리고 우리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그 이면에는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과 항일의 이데올로기, 한국전쟁 당시 분단의 이데올로기, 경제성장 시기의 진보와 보수 이데올로기 등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그랬다. 그래서 임흥순은 그 시간을 지나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로 묶었다. 임흥순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영화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케 한 <위로공단>도 결국 한국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지만 소외되었던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그 상황을 은유적으로 재연한 영상을 교차편집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결국 임흥순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이다. 사람을 보여주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이뤄진다. 이번 전시를 위해 만났던 4명의 할머니도 있지만 구로공단과 마트의 여성노동자, 아시아의 여성 노동자를 인터뷰한 <위로공단>에 나오는 많은 노동자들, 2016년 작품인 < 려행>의 탈북여성들 등이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한두 명을 만나서 1~2 년에 이뤄질 수 있는 인터뷰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과 그 사람들에 대한 임흥순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느냐 물었다. 그것도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임흥순이 답했다. “그런 생각을 한 계기가 있어요. 학창 시절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어요.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과 남의 말을 들어주는 건 좀 달랐어요. 후배가 와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남에게 말 못할 이야기를 했을 때 좋은 감정이 들었죠. 누가 제게 말을 할 때는 내 이야기를 들어줘, 들어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잖아요. 본인도 말 하면서 응어리진 부분이 해소되겠지만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믿고 있다 는 감정이 저에게 전달되니까요. 그래서 인터뷰 형식의 작업 방법으로 작품 을 만드는 것 같아요. 물론 영상 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했죠.”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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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시 설치 과정 공개 장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사전공개와 워크숍을 통해 완성됐다. 2 5 전시실에 설치된 설치 작품. 배는 영상의 주인공들에게 다양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3 <우리를 갈라 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대부분 영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를 추적하는 카메라는 결국 주관적인 시선이 들어 있다. 임흥순은 사람들을 그렇게 비추지 않는다. 인터뷰 장면은 카메라가 거의 고정되어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편집에도 큰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재연의 장면이 그의 가장 큰 기교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쉬운 방법도 있죠. 일종의 감정을 보여주면 돼요.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하려면 쉽게 감정을 전달하고 소비시키면 안 돼요. 그래서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만들다 보면 제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대화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굉장히 지질한 면도 있는데 같이 일하는 김민경 프로듀서가 저와 작품의 거리를 조절해줘요. 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굉장히 불이 붙거든요. 분노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분들의 심정으로 들어가요. 그럴 때 옆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죠.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도 좋은 부분은 들어야죠. 어째든 여기서 예술분야와 대중매체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거리두기요. 대중적인 영화는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지만 그 여운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반면 예술은 사람에게 굉장히 깊이 스며든다고 해야 할까요. 대중매체가 옷이라면, 예술은 영혼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생각, 인식 그런 부분을 건드릴 수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심연에서 작동하는 작업이죠.”

임흥순이 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2010년 부터다. 7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됐다. <위로공단>도 꽤 긴 시간의 작업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의 인터뷰는 당장의 작업을 위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1년 정도 작업을 했어요. 고민은 작년부터 했죠. 2010년부터 ‘제주 4·3’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념> 을 준비하다가 김동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계속 만나고 싶었지만 거리 때문에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았죠. 직접 만난 건 <비념>을 촬영할 때 가 아니라 완성된 이후예요. 2년 전이었어요. 그제야 인터뷰를 했죠. 김동연 할머니처럼 이미 알고 있던 분도 계시지만 그분들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해온 건 아니에요. 놔뒀다가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엮어야 되겠다 싶어서 가지고 온 거죠.”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영상에서 나오는 내용 외에 다른 것들이 묻어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문제들이다. “제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모든 작품이 과거의 이야기죠. 하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의 시발점은 현재어요. 작년부터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이거든요. 물론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 를 촬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현재의 사건이 실제로 돌아가는 공간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과거로 가는 거죠. 나를 알기 위해서 부모님과 이야기했듯이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보려고요.”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룬 <려행> 같은 작품도 있다. 북한 을 탈출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탈북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그렸다. “북한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려행>은 접근하기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다른 작품은 모두 과거의 일을 다루거나 현재 진행되는 부분이 있어도 일반 사람들은 과거에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북한 문제는 현재도 진행형이에요. 저보다 당사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를 사전에 이야기해야 하죠.” 탈북민도 4명의 할머니도 모두 공통점이 있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문제로 삶을 떠밀려온 것이다. “정정화 할머니는 중국에서 20년을 보냈어요. 김동일 할머니는 한라산에서 지리산으로 그러다 일본에서 사시다 돌아가셨죠. 고계연 할머니 같은 경우도 경상도가 고향인데 가족을 찾아서 지리산에 왔다가 3년 동안 복역하고 광주에서 살았어요. 이정숙 할머니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이란-이라크전쟁을 겪었죠. 시대적인 상황과 전쟁이 만들어낸 결과예요. 탈북민이나 새터민이라고 불리는 분들도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반대로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들어오잖아요. 현실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 있는 거죠. 이런 근원적인 문제가 분단이고요. 이번 전시도 해방 전후시대와 분단 전후시대에 살았던 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를 보고 이런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할 수 없을까, 라는 고민을 안겨드리기 위한 거죠.”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체화하는 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아프고 쓰린 시간들을 마주 하면서 임흥순 본인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이었다. “ 변화가 일어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죠.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나 중심이에요. 사람도 다 자기 중심이죠. 욕심이든 욕망이든 물질이든 자기를 위해서 계속 채우려고 하죠. 물론 지금도 저를 채우려고 하죠.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를 계속 없애려고 노력해요. 그래야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에게 실질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생겨요. 자아로 채워지고만 있는 상황에서는 남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그러면 사실 자기부터 노력해야 하는 거죠. 자신을 비우면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와요.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아왔고 경험한 분들이잖아요. 단순히 그분들의 이야기만 듣는 게 아니에요. 그분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면서 살아오셨단 말이에요. 그런 모습을 많이 보고 느끼죠. 그러면서 제가 약간 깊어진다고 해야 하나. 삶을, 사람을 대하는 것들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에게서, 인터뷰이들에게서 얻는 게 굉장히 커요. 그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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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02-3701-9500)


EDITOR  AHN SANG HO    

PHOTOGRAPHER  KI SUNG YUL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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