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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ART

자연의 율동 사람의 감각

기업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단이 한국에도 여럿 있다. 현대미술을 지원하는 재단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우란문화재단의 행보는 조금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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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이 예스럽지 않고 나아가 현대적 감각을 갖춘다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적인 미감’이라는 수식어는 참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실제로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몇몇 전시에서 이와 좀 다른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 공예 파트에서 호평받은 전시를 들여다보니 우란문화재단이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보였다. 우란문화재단 문화사업팀 내 전시 파트에서는 공예 전시를 기획한다. 전통 공예 장인을 지원하고 좋은 전시를 하는 곳(아름지기, 예올 등)은 이미 존재하니 이름나지 않은 지역 장인, 생활 장인과 현대 공예 작가들을 찾아보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기존의 좋은 프로그램들 사이, 그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틈새를 영민하게 짚어낸 셈이다. 2014년부터 시작했지만 성과가 놀라운 것이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우란문화재단에서 진행했다. 우란문화재단의 장윤주, 정지영 큐레이터의 총괄 기획으로 전시명은 <한 줌의 지혜 >였다. 장윤주 큐레이터는 말한다. “ ‘한 줌’은 손으로 조를 한 움큼 쥐었을 양으로 요즘 사용하는 그램(g)으로 환산하면 28.3495g이에요. ‘줌’, ‘뼘’ , ‘되’, ‘말’ 등 인체를 기반으로 도구를 만들었던 전통의 지혜를 오늘날의 치수인 숫자로 해석한 기획이었죠.” 한 되의 양은 1.803L, 한 홉의 양은 300g, 금강비의 비례는 1:1.141 등의 숫자를 제시하고 작가 김계옥의 테이블웨어, 윤정훈의 막사발, 이지아의 사진 콜라주 영상 등을 매치했다. ‘금강비’를 소재로 삼은 이지아 작가의 영상 작품을 보면, 실체화된 공예 작품에만 국한하 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장에서 호응이 아주 좋았던 작품이에요. 한옥은 1:1.141의 비례인 금강비를 담고 있어요. 작가는 한국 전통의 대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석굴암, 불국사 대웅전, 첨성대, 부석사 무량수전 곳곳이 금강비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건축의 도면과 그래픽 조합으로 콜라주해서 보여주었죠. 작가는 영상에서 ‘금강비는 삼라만상을 자연으로 치환하여, 우리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 자연과 조화되어 살아가는 이상적인 방법을 구현한 것’이라 말했죠.”

재단 내 전시장에서 진행한 자체 기획전으로는 <나누는 상, 담는 그릇>(2015년), 전통길쌈을 소개한 <평립: 규방의 발견>(2016년)과 공예와 공간을 주제로 한 <율동감각>전이 있다. 미술계와 디자인계, 건축계에서 두루두루 호평을 받았던 <율동감각>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 공간 디자인은 서승모 건축가에게 맡겼다. 한옥의 내부 요소인 바닥과 벽에서 모티프를 얻어 한지로 마감한 넓은 상판을 바닥에 깔아 전시 공간으로 마련했다. 관람객이 무대 주변의 경사로를 오르내리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단차를 두었고, 시간대에 따른 빛의 변화를 한옥에서 경험하도록 전시장 조명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세밀하게 세팅된 조명의 조도와 색의 변화에 따라 선과 면, 고가구와 조형물, 목재와 천이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는 듯하다. “보통 한옥의 입면을 보면 수평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내부에서 실제로 경험해보면 수직적 요소가 강하죠. 방에서 대청마루, 대청 마루에서 기단, 기단에서 마당으로 이동할 때 수직활동이 굉장히 활발히 이루어지죠. 또 한옥은 어떤 물건이 놓이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바뀌잖아요. 사랑채를 생각했을 때 소반을 놓으면 식당이 되고, 서안을 놓으면 서재가 되는 식으로요. 수평과 높낮이에서 오는 사람의 움직임, 그리고 목가구 공예품에 의해 변화되는 장소의 기능성을 ‘율동감 각’이라는 주제로 담아내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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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진경, <책갑형 사층 책장>, 참죽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유칠, 114×40×155cm.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인 유진경은 나무의 결을 살리며 강도를 보강하는 오동나무의 낙동 기법을 적용한 책갑형 4층 책장을 작업했다. 소목장에 비해 이수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전통기법으로 작업해야 하는 책무를 지키며 현대 미감을 살린  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양병용, <작은 나주반>, 2017, 오리나무,  29×22×21cm. 물레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에 목재를 고정한 뒤 칼을 갖다 대고 목재의 바깥쪽부터 중앙까지 깎는 방식을 ‘목선반’ 기법이라 한다. 양병용 작가는 목선반 기법을 사용하고, 장식적인 요소보다 비례와 균형을 우선하여 소반을 만든다.

3 이정혜, <모이다(Moida)>, 2017, 합판. 사랑방 가구인 서안과 해주반을 응용한 모듈형 가구로, 각각 서로 다른 높이와 기능을 가진 테이블로서 한데 모으고(Moida), 쌓을(Olida) 수 있다. 유진경 이수자와 협업으로 제작한 이후, 이정혜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구입, 사용할 수 있도록 합판으로 다시 제작했다. 4 이정섭, <엘리멘트 6(Element 6)>, 2012, 비치블랙우드, 42×34×218cm.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이정섭 목수는  현대적 생활공간에 맞는 사방탁자와 문갑을 선보인다. 전통 가구 보다 한 두단씩 확장한 형태다.
 

‘큰 솜씨는 오히려 서툴게 보인다’는 뜻의 ‘대교약졸’이라는 말이 있다. 큐레이터는 한국의 가구는 ‘대교약졸’이라는 다소 엄격하면서도 단순한 미감 속에 있다고 말한다. 달항아리를 떠올리면 쉽다. 완벽한 원이 아닌 것에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것에는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여백이 없지만, 관객도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여백의 디자인은 한층 높은 차원의 미학이다.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는 전통 가구보다 한두 단씩 확장시킨 사방탁자와 문갑을 선보였다. 사방 탁자는 구조가 간결하고 사방이 뚫려 있어 다소 협소한 사랑방 공간에 적합한 가구로 최소한의 소재로 제작한 듯 가느다란 뼈대로 이루어져 있고, 못을 쓰지 않는 짜임기법으로 제작한다. 겉보기에는 단순하나 보이지 않는 내부는 구조적 계산이 응축된, 견고한 가구다. 양병용 작가는 전통 공예가 가진 원형의 미감에 현대적 실용성을 더한 소반을 만든다. 바닥에 앉는 평좌 생활에 맞게 제작된 소반은 부엌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음식을 나르기에 편한 규모로 제작 되어왔다. 양병용 작가의 작은 나주반, 12각 구족반과 함께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경기지방 호족반까지 함께 전시했다. “양병용 작가의 소반은 얼핏 보면 전통을 그대로 재현 한 것 같지만 소반의 상판과 다리를 현대적인 비례미를 생각해 변화시켰어요. 전통 소반의 특징을 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넣는 것이죠. 소반은 다리 모양에 따라 이름이 정해져요. 말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마족반, 개의 다리는 구족반, 호랑이 다리는 호족반이라 하고요. 소반은 다른 목 가구와 다르게 지역색도 아주 강하죠. 끝이 버선코처럼 올라온 것은 북한 지방에서 쓰던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보여요.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전통 목 가구 또한 함께 전시를 했는데, 그것들 또한 현대적인 조형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시간대를 넓힌 전시예요.” 김민수 작가는 한옥 대청마루에 거는 커다란 조각보와 창에 거는 발을 선보였다. 퇴계 이황이 직접 서당의 설계도를 그려 불승에게 건축을 맡겼다는 ‘도산서당’에서 작가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도산 서당과 같은 규격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이곳에 산다면 어떤 가구를 사용하고 싶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작가는 도산서당 대청마루의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에 맞춰 조각보를 만들었다. 남향에 걸면 빛을 가려 적절한 채광을 유지하고, 추운 겨울에 북향에 걸면 찬 기운을 조금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서당 동편으로 보이는 정원은 절우사, 정원으로 향하는 시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빛을 적절히 투과시켜주는 노방 원단을 사용했다. 온돌방의 창문 크기에 맞춰 발도 만들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생활에서 아름답게 사용 될 작품 같기도 하다. 이들을 보고 있으니, 온돌방에서 낮잠을 자는, 대청마루에서 이야기하는, 해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리듬이 집에 드리워질 풍경이 선선하게 그려진다. 전시장 경사로의 끝 지점에는 소목장 이수자 유진경의 4층 책장이 놓여 있다. 소목장 이수자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라는 유진경 이수자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울린다. “소 목장은 아니지만, 이수자분들 역시 소재와 도구, 기술 등을 전통 기법으로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해요. 현대 공예가들보다 어떻게 보면 더 힘든 길을 가고 있는 셈이죠. 나무의 결을 살리며 강도를 보강하는 오동나무의 낙동 기법으로 제작된 책장이에요. 옛날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씨앗을 심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오동나무가 그만큼 잘 자라고 딸이 시집갈 때가 되면 장 하나를 만들 정도의 두께가 된대요. 단점이 무르다는 것인데 유진경 이수자는 인두질을 통해 강도를 보강하는 낙동 기법 굉장히 뛰어나시죠.” 소반이나 사방탁자, 낙동 기법이나 마족반 등의 용어들은 생소 하다. 이케아의 ‘라운지소파’나 ‘북엔드’가 훨씬 익숙한 삶을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기도 한데, 전시장에서 요즘 작가들의 깊고 융숭한 작품들을 마주하니 이 좋은 세상을 모르고 사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통 공예 작품은 ‘수집’하지만, 현대 공예 작품은 ‘사용’에 있지 않은가. 도전해볼 생각이다. 우란문화재단에서 기획한 또 다른 공예 기획전은 올해 하반기에 만날 수 있다. 현재는 동빙고동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지만, 올여름이면 성수동에 독립된 전시 공간을 갖춘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일상 너머의 시간대에서 현재를 돌아보고 과거와 만나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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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사진 제공 우란문화재단(070-7606-5577) 


EDITOR  KIM MAN NA    

PHOTOGRAPHER  LEE SOO KANG

출처 헤리티지뮤인 2018년 1월호
본 기사를 블로그, 개인홈페이지 등에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기사를 재편집하여 올릴 경우 발생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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